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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디모데후서2장1-13절 /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 김광영목사
시애틀항해일지
2024. 11. 13. 06:17
주님, 우리가 먼저 충실한 제자가 되게 하소서. 또한 또 다른 사람들 구원하고 길러내는 스승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나라의 일군으로 말씀 안에 강하고 그 안에 살아가면 선한 분별력을 갖게 하소서, 사랑과 온유로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소서~
전문맥을 살펴보면, 디모데를 향한 권면과 연결해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 부겔로 허모게네를 포함한 아시아에 있는 많은 이가 바울을 버린 것을 디모데도 안다.
둘째, 긍정적인 경우로 오네시보로의 가정인데, 디모데도 안다.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도 섬겼는데, 자신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도 자주 방문해 격려했다고 한다.
이 두 경우를 예로 든 이유는 디모데가 바울의 고난에 움츠러들지 말고, 상황과 관계없이 당당히 복음사역을 감당하라는 것이다.
이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살피자.
1문단 (1-2) 강하고 가르치라 |
① 진리의 전달 자세는 어떠해야 하나? |
진리의 전달에 대한 4단계를 살펴보자. 먼저, 신앙은 그리스도에 의해 바울에게 맡겨졌다. 그것은 신앙이 발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탁에 의해서 그의 것이 되었다.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1:11,12) 두 번째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맡겼다.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진리’가 되어졌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순교를 앞둔 마당에 더 이상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박탈당한 상태에 디모데에게 이미 첫 번째 서신을 통해 복음에 대한 부탁을 했고, 또 부탁하고 있다. ‘많은 증인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들었던 가르침으로 전달하라’는 것이다. 당시에 영지주의자들이 판치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들 자신의 사적인 계시들을 가지고 있으며 사도들로부터 전달된 비밀 전통들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바울은 어떤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열려지고 또 어떤 진리는 소수에게 특별히 비밀리에 맡겨졌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않았다. 세 번째로 디모데가 바울에게서 들은 것을 지금 그는 분명히 아시아의 많은 배교자 가운데 배교하지 않고 남은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여야 한다. 엘리야 시대에 하나님이 남겨두신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천인처럼, 하나님이 악한 시대가운데 남겨두신 충성된 자들이 분명히 있고,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 전달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우리가 청년부 소그룹과 리더훈련 체제는 바로 이러한 성경을 모범을 따르고 있다. 비전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사람을 통해 전수된다. 한 사람이 또 한사람을 키우고 돌볼 수 있는 긴밀한 리더 부리더 체제를 통해 그들이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고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복음의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 소그룹 리더와 멤바들은 이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
2문단 (3-7) 고난 받는삶 병사 경기자 농부 비유 |
② 수고를 위한 3가지 비유 |
(1) 헌신적인 병사, 군사 현역 근무의 군사들은 안전하거나 편안한 시간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위험과 고난을 감수한다. 군인들이 전쟁을 위해 일어나는 곳은 안락한 침상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역경과 엄격함과 텐트의 생활을 겪으며 전투를 한다. 우리를 얽매이게 하고 미혹시키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신앙을 발돋움 하는데 있어 나를 발목을 잡는 것이 무엇인가? 우선순위가 뒤바뀐 일들인가? 개인의 안일함에 도취된 게으름인가? 어떤 중독적인 즐거움인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상 디모데처럼 소심한 사람이라도 그리스도의 군사이다. 우리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짐들을 벗어버리고, 믿음의 싸움을 싸울 수 있는 군사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 법을 준수하는 경기자 헬라의 경기장에서 경기하는 경기자의 모습을 바울은 보여주고 있다. 고대 운동 경기는 경기자가 힘이나 기술을 제 멋대로 과시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경기자체는 물론이요 예비훈련을 위해서도 그 자체의 규칙을 지켰다. 또한 헬라 경기들에는 상이 있었는데, 금메달이나 은으로 된 트로피가 아니라 월계관이었다. 그러나, 경기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우수하다 할지라도 면류관을 받지 못했다. (3) 수고하는 농부 경기자가 공정한 경기를 해야 한다면 농부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 기계가 없었던 사회에서 농부는 성공적인 농사기술과 함께 땀 흘리는 정도에 의해 한해 농사의 승패가 갈린다. 아무리 땅이 척박하고, 기후가 모질고, 농부의 기분이 내키지 않아도 그는 자신의 일에 매달려야 한다. 추수 때에 곡식의 첫 번째 몫은 수고한 농부에게로 돌아간다. 게으른 자는 결코 좋은 농부가 아니다. 그는 밭을 갈지 않고 씨도 제대로 뿌리지 않고 병충해를 막지도 않고 추수 때에 잠을 자기 때문에, 그의 밭은 덤불과 거친 풀이 퍼지고 넘쳐서 수확물을 거두어 들일 수 없다. |
기억할 것 3가지다. 군인이 그의 군 생활에 전념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승리란 결코 없을 것이며, 경기자가 경기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월계관은 물 건너 가고, 농부가 농사일에 땀흘림이 없으면 수확이란 결코 없다. 우리는 적당히 예배참석해주고 훈련참석해 줌으로 우리의 사역에 열매가 있을 것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말자. 위대한 바울도 주의 일을 위해 자신을 쏟아 부어 심지어 감옥에 갇히기까지 수고했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디모데라는 열매를 주셨고, 교회들을 그 땅 가운데 허락하셨다. |
3문단 (8-13) 예수를 기억하라 복음에 대한 바울의 태도&확신 |
③ 바울이 기억하게 하는 것 |
그리스도의 체험(8절) 한 사도로서의 자신의 체험(9,10절) 모든 그리스도인의 체험(11-13절)로 강조를 계속하고 있다. ⑴ 그리스도의 체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한다. 우리는 망각의 존재이다. 교회사는 쓸데없는 무익한 신학토론, 순전히 인본주의적 활동, 자신의 편협한 교구적인 일 등에 몰두함으로 종족 그리스도를 망각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왜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하는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는 복음, 아름다운 의탁물의 진수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시고’ 그리고 ‘다윗의 씨’가 되시는 분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먼저, 주님의 인격, ‘다윗의 씨’라는 말은 주님의 인성을 암시한다.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이라는 말은 그의 신성을 암시해 준다. ⑵ 사도바울의 체험 그는 지금 고난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가 로마 시민이고 무죄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범죄자’처럼 쇠사슬에 매이는 고통스러운 굴욕을 감내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는 쇠사슬에 매였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다. 사도에 의해 감내된 고난을 통해서 ‘영원한 영광’을 선택된 자들이 얻게된 것이다. ⑶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체험 바울은 이제 초대 그리스도교의 어떤 찬송가의 단편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것을 그는 확실한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 그리스도인의 삶은 죽는 생활, 참는 생활로 묘사되고 있다. 우리가 주님의 고난들을 함께 나누고 참을 때만이 우리는 내세에서 그의 통치를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에 이르는 길이 죽음이며 그리고 영광에 이르는 길이 고난이기 때문이다. |
바울은 축복이 고난을 통하여, 결실이 수고를 통하여, 생명이 죽음을 통하여, 영광은 고난을 통하여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No cross No crown이다. 예수께서 수치스러운 죽음을 통하여 하늘나라의 통치를 획득하심처럼, 선택된 자들이 구원의 영광을 얻도록 바울이 사슬에 묶이고 감옥에 갇힘처럼, 군인으로 기꺼이 역경을 견대게 하고, 경기인은 훈련을 견디게 하고, 농부로 수고하게 하는 것이 이 원리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아무런 희생도 치르게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으로 삶과 봉사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