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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디모데후서 2장 14-19절 /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 / 김광영
시애틀항해일지
2024. 11. 13. 06:32
바울은 부끄러움에 대한 맥락을 이어온다.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풀기를 기도하면서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2:16) 고 한다. 그 자신이 먼저 복음을 위한 선포자, 사도, 교사로 세움 받은 것에 대해서도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다'(1:12)고 한다. 이젠, 디모데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자신을 드리기를 종용한다.
(14-19) 거짓교사에 대한가르침 |
④ 부끄러울 것 없는 일군 vs 악한일군 |
(1) 선한 일꾼 옳게 분변한다는 말은 진리의 말씀을 똑바로 자른다는 것을 말한다. 선한 일꾼은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여 사람들을 혼란시키지 않는다. 반대로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견지하고 샛길을 피하면서, 자신이 항상 그 길에 확고하게 서 있고 그 길을 다른 사람들이 뒤를 이어 따르기에 쉽도록 만드는 주의 깊은 관심을 가지고 말씀을 다룬다. (2) 악한 일꾼 진리에 관해 그릇되었다는 말은 궁술에서 활이 발사된 과녁에 비유되고 있다. 목표를 빗나가고 벗어난 것이다. 과녁에 향해 쏠 때 그것을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행한 결과에 대한 사람들이 영향을 받게된다. 그가 길을 곧게 뚫는 다면 사람들은 그 길을 따르고 지킬 것이요. 그런 반면 그가 목표를 맞추지 못한다면 과객들의 시선은 그 화살을 좇아 벗어날 것이다. 아시아에는 심각한 오류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주님의 백성의 부활의 보증과 모범이 되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포된 복음을 전하지 않고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영지주의자들로 영혼의 감옥인 육체에 영혼이 다시 들어와서 육체가 부활한다는 사실에 대해 부정하고 영혼의 부활만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한 이단들은 ‘진리의 말씀’을 바울이 ‘말다툼’으로 부르고 있는 것으로 대체시켰다. 악한 일군과 거짓된 교사에 대해 그들을 ‘피하라’고 권한다.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
인간들의 신앙의 기반이 무너뜨려질 수 있다 해도 하나님의 기반은 여전히 견고하다. 그것은 이중의 ‘인침’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비밀스럽게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시며 그들을 영원히 안전히 지켜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공개적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나게 하고’ 그로 하여금 그의 거룩을 통하여 그가 주님께 속했음을 증명하게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바울은 그 자신의 백성을 알고 인정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시며 그리고 오직 그만이 마음을 꿰뚫어 보시기 때문에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시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