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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22-27 불편한진실 본문
불편한 진실
김광영 목사
Opening
“내 딸을 100원에 팝니다.”
한 군인은 시장통에서 한 모녀를 목격한다. 어머니는 ‘내 딸을 100원에 팝니다’라고 쓴 종이를 목에 걸고 있다.
여섯살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딸을 100원에 팔겠다는 여자 주변에는 이미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 있다. “저 여자 완전히 미쳤구만” “개도 3000원인데 딸이 개 값도 안 되냐” 등 사방에서 욕설이 쏟아졌다. 군인은 먹을 게 없어 자식을 버리는 경우는 봤어도 딸을 팔려고 내놓는 건 처음이어서 충격을 받았다. 그것도 고작 100원에.
이 때 “우리 엄마,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어요”라고 딸이 외쳤다. 알고보니 암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던 어머니가 딸을 돌봐줄 사람을 찾기 위해 ‘100원에 판다’는 글을 들고 장터로 나온 것이었다.
곧 사회안전원들이 들이닥쳤다. “여기가 사람을 노예처럼 사고 파는 썩어빠진 자본주의 사회인줄 알아? 너 같은 여자는 정치범 수용소로 가야 해”라며 어머니를 연행하려 할 때 군인은 100원을 어머니에게 내밀며 “당신의 딸을 100원에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모성애를 사겠다”면서 딸을 데려가려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군인의 손을 한번 부여잡더니 부리나케 어디론가 달아났다. 구경꾼들은 군인의 마음이 바뀌어 딸을 데려가지 않겠다고 할까봐 어머니가 줄행랑을 친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내 펑펑 울면서 다시 나타났다. 100원짜리 허연 밀가루 빵을 손에 쥔 채로. 그는 딸에게 빵을 먹이며 통곡했다.
자유북한방송 “100% 사실”
이 글은 2003년 남한에 온 탈북자 김운주(가명)씨가 지난해 7월 자유북한방송에 기고한 것이다. 북한 주민과 탈북자를 주 청취자로 하는 라디오 방송인 자유북한방송은 이 글을 지난해 7월17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최근 이 글은 누군가에 의해 잔잔한 음악이 곁들여진 동영상 파일로 제작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로 확산됐다.
자유북한방송은 김운주씨가 북한을 탈출하기 전 평양의 한 시장에서 직접 본 광경을 허구없이 쓴 글이라고 주장했다. 자유북한방송 김기혁 부국장은 29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글 내용은 100% 사실”이라며 “김씨에게 북한의 비참한 실상을 가감없이 써달라고 부탁해 기고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국장은 이어 “북한에서 이 같은 상황은 일반적인 광경”이라며 “북한 시장에 나가보면 집에서 굶고 있는 부모를 살리기 위해 몸을 파는 어린 아이도 많고, 겨울이면 헐벗은 어린 동생을 안고 함께 얼어죽은 누나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고 했다.
자유북한방송은 ‘너무 일반적인 풍경’이란 이유로 이 글을 방송하지 않았다. 북한 주민들은 이 얘기를 들어봤자 별 감흥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김 부국장은 “북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평범한 소재여서 라디오로는 방송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며 “남한 사람을 위해 인터넷 기사용 소재로만 썼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불편한 진실앞에서 이렇게 반응한다.
“지어낸 얘기 아닐까?” … “사실이 아니었으면…”
우리에게는 이렇게 대면하기 힘든 불편한 진실들이 있다.
그 진실을 보게 해 주는 것이 바로 다름 아닌 성경이다.
약 1:23-24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왜 잊어버리겠는가?
여기서 자신의 모습은 뭔가 변화를 요구하는 진실을 대면하는 순간이다.
기억력이 나빠서인가?
그것이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말씀을 듣고 행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 곧 잊어버린다.
또, 최근의 기독신문의 기독교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이런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게 되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인 기윤실에서 올해 10월말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를 조사했다. 그결과 기독교에 대한 호감도는 18.4%에 지나지 않았다.
신뢰도 불신도 하지 않는 다는 사람이 33.3%, 불신한다는 쪽은 48.3%에 이르렀다고 했다. 문제는 나이가 젊을 수록 교회를 불신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데, 기독교가 사회의 정화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5명중 1명 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사회 교인이 20%라면 교인들만이 교회를 신뢰하고 있다는 결론으로 까지 나갈 수 있다.
다행히 비기독교인의 신뢰지수는 35점, 기독교인의 신뢰지수는 67.7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교인이 교회에 기대를 거는 지수가 70%에 겨우 달하고, 비기독교인은 3명중 1명정도만 교회를 신뢰한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가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가?
1. 말씀을 듣기를 속히 하라.
우리는 말씀을 듣기를 속히 해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정직한 모습을 대면하게 한다.
쉽게 원망의 말을 내뱉는 것이나 성내는 것은 더디해야 한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내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하셨다.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도록 입을 막고 귀를 열어야 한다.
원망 나올 즈음에 말씀을 보자. 극동방송을 듣자. 설교테잎을 듣자. 성경을 읽자. 소그룹에서 나누자.
그리고, 모든 더러운 것 넘치는 악은 내어버리고, 능히 너의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에 심겨진다. 그것이 뿌리가 내리고 토양을 뚫고 나와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그것을 깨달아 잘 지켜야 한다.
2.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라
이 도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 제시되는데, 그것은 도를 듣기만하여 자기를 속이는 자가 되지 않고 도를 행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도를 듣고 행치 않는자는 거울로 자기 생긴 얼굴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떤 것을 곧 잊어 버리는 자이다. 거울은 보고 고치기 위한 것인데, 곧 잊어 버리면 자신을 속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설교만 듣고 성경공부만 하지 말고, 자신의 삶에 그것을 적용하여 삶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경건에는 헛된 경건과 참된 경건이 있는데, 헛된 경건은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않고 자기 마음을 속이는 것이다. 예배에 잘 참석하고 기도회도 나오고 종교적 의무는 잘 이행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말을 자제하지 못할 때 그 진가를 잃게된다.
우리 입술을 지키는 것 비방이나 원망의 말이 아니라, 감사의 말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다. 말씀을 들여다 보고 있는자가 아니라 실행하는 자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기독교인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때 이렇게 대답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존경하는데 교회가 싫다!” 왜인가?
그리스도를 도를 듣고 그 불편한 진실 앞에서 삶을 바꾸지 않고 그저 종교적인 안락함에 안주하는, 삶이 죽어버린 교회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스테인드글라스나 조직신학책에 감금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몸은 온전히 살아있다. 배고파하고 목말라하고 피를 흘리고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담배피우지 않고, 술마시지않고, 그냥 그런것인가?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를 안다면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알아야 한다. 성경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적극적인 명령을 주신다.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한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정말로 겁나는 것은 내가 성경을 전혀 모른다는 게 아니라 조금 알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우리가 성경을 제대로 읽는다면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죄가운데 빠져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 죄로 인한 통곡이 있게된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져야할 십자가의 삶이다. 그것은 이기심으로 똘똘뭉친 우리의 자만심을 깨뜨리길 요구한다.
찬송가 가사처럼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줄 알고 버리기”를 요구받는다.
참된 경건이 무엇인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서 돌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을 고아의 아버지요, 과부의 재판관(시68:5)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고아의 아버지가 되어주고 과부의 재판관이 되어줄때 세상은 과연 성경대로 살아가는 교회에 소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곁의 어려운 사람들을 참으로 돕고 있는가?
약2:15-16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올 겨울 우리교회가 예수님의 손이 되려한다. 경기붙은 경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더 추운 겨울을 맞고있다. 사랑의 쌀을 받을 사람을 찾아보자. 사랑의 음악회에 참여하여 아직도 연탄으로 겨울을 나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탬을 주자. 사랑의 김치나눔을 위한 여전도회의 섬김에 동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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