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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 Port Hamilton 본문
영국의 거문도 탐사(1848. 1859)
서양에는 거문도가 Port Hamilton으로 알려져 있는데, 영국해군 Edward Belcher 함장의 지휘하에 섬을 탐사하고자 군함 Samarang호가 내왕했다. 1개월의 탐사후 1848년 <사마랑호 탐사 항해기>를 2권으로 출간했다. 증기선이 나오기전 범선 항해시대에 돛단배로 원양항해를 한 것이었고, 식사, 땔감, 야채, 육류 및 해류 등을 구입코자 악촌후로 피할 임시 피난처가 되었다. 제자도 우도 첫도착이후 4일간의 거문도 해역을 탐사하였는데, 당시 해군성 차관의 이름을 따서 Port Hamilton이라 불렀다.
이후, 1855년에 크림전쟁으로 영국과 러시아의 긴장 상태가 고조되었고, 1859년 영국군함 Dove호가 거문도에 도착하여 2주간을 보내면서 제주해역과 조선 남해안을 탐사한 것이다. 이와같은 내용은 귤은 김유선생의 문집 <해상기문>에 기록이 되었고, 영국군함 Dove호에 중국인 오열당이 동승하여 주민과 필담으로 교류했다.
러시아의 거문도 내항(1854)와 영국군 무단 점거(1885-1887)
서세동점의 시대적 분위가 속에 1854년 푸차친(Putyatin)의 러시아 함대가 거문도에 내항하여 조선에 대한 최초의 개항을 요청했다.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는 극동항국로 블라디보스톡(러시아령)을 공격하기 위한 기지로, 도웰(Dewell) 해군중장이 거문도를 무단점거하게 되는데, Agamennon호, Pegasus 호, Firebrand호 3척이 2년간 1885-1887년에 점거하는데, 청나라와의 막후협상으로 그것을 진행했다. 조선은 영국군 철수를 요구하며 외부대신 김윤식을 파견했다.
미국의 거문도 탐사 (1867)
1867년 황해도의 제너럴 셔면호가 소실되면서 Bell제국이 Schufeldt중령에게 셔면호의 실종사실을 탐색하고, 거문도를 기항 조사할 것을 명령한다. Schufeldt함장은 영국 Edward Belcher의 항해기를 읽고 중국 체푸에 있는 미국인 생물학자 Bichmore를 만나 조선행을 하게 되는데, Wachusett호가 도착하게 되었다.
조사 기록에 의하면 해군함정의 정박 최적요건지로 파고는 11피트, 조류가 급하지 않음. 3개의 섬으로 싸여있는 정박지는 마치 육로에 쌓여있는 내항과 같다. 완만한 경사로 되어 있는 해안선 내 수심도 적당. 3-4개의 섬이 마주보아 경비역할이 용이하며 해군 장병휴향지로 최적이라고 소개한다. 여름에는 남쪽해안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고 겨울은 북쪽이 막혀있어 북서풍, 북동풍을 동반한 찬 바람을 막아주는 곳으로 본도와 200마일 떨어져 있다고 했다.
거문도의 등대(1906)
거문도 등대는 우리나라에 2번째 세워진 국제적 규모의 등대로 일제시대 국제적 항로의 성격으로 가덕도 등대와 더불어 설치가 되었다. 1906년 프랑스제 프리즘 렌즈로 불빛거리가 40km에 이르고 무적신호를 갖추었다.
거문도 동도리 유촌과 귤은선생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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