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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이야기

히스기야

시애틀항해일지 2008. 4. 12. 13:45
 

히스기야

 

 

 


히스기야의 아버지는 아하스 왕이다.

아하스 왕은 자기 아들을 불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잔인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었고(왕하 16:3), 또 여러 이방 신상과 우상을 만드는 범죄를 저질렀다(대하 28:4). 그리고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중심지인 성전의 문도 닫아 버렸다(대하 28:24).


그런 아버지밑에서 자라난 히스기야였다.

하지만, 그런 타락한 신앙 앞에서 히스기야는 아비 닮기를 거부하였다.

신앙이란 그런 것이다. 마치 연어가 그 생명력으로 물을 거스려 올라가듯, 우리 삶의 익숙한 환경과 문화에 대해 잘못된 것에는 거스릴수 있는 것이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며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롬12:1-2)는 것이다.


히스기야는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었다”(왕하 18:4). 당시에 또한 모세가 광야시절에 만들었던 놋뱀을 백성들이 우상으로 섬김으로 그것을  놋조각에 불과하다는 ‘느후스단’으로 말하며 부숴 버렸다(왕하 18:4)


히스기야 시대는 참으로 국가적으로 힘든 시대였다.

먼저는 동족 국가인 북이스라엘이 앗수르라는 대국에 b.c 722년 멸망하였고, 그 즈음에 히스기야가 남유다의 왕으로 즉위했다.

당시 중동지역의 새로운 강자였던 앗수르는 파죽지세로 히스기야가 통치하는 남유다도 정복하려고 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히스기야가 결단하고 행한 것은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이나, 경제력을 회복시키려는 것이 아니었고, 무너진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며 신앙을 바로 새우고자 하는 것이었다.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같게 하옵소서”(애 5:21)


우리의 삶이 위기를 당할 때 우리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히스기야는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먼저, 우리속의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히스기야의 개혁은 바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우상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우리속의 우상은 무엇인가?

우상은 바로 자기중심주의적인 것이다.

우상은 우리 삶에 간섭하거나, 내가 변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냥 잘되게 복주면 되는것이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그런 우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잘못된 것을 회개하고, 죄를 씻어내기를 바라는데, 우리는 그저 내 하는 일이 잘되기 만을 기도하고 있지 않는가?


마음을 오로지 하여 하나님만을 섬기고자 했던 히스기야.

하나님은 그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앗수르의 대군이 예루살렘을 치고자(왕하 18:17) 왔을때, 생명을 건 기도를 통해 하룻밤에 앗수르의 18만 5천명의 대군이 천사들의 칼에 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왕하 19:35)

우리가 가진 염려는 무엇인가? 그것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우리를 죽일것 같이 압도해 오는 것은 무엇인가?


미국의 한 도시의 사방 일곱 블록을 지상 30m까지 채우는 안개를 응축해 보면, 고작 물 반컵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엄청나게 커보이고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것 같은 안개도 햇빛이 나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우리의 염려의 안개를 묵상하지 말고, 그 안개를 그치게 하시는 빛인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자.

(시 55:22)“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고후1)“마음의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고난이 오직 죽은자를 살리시는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심”

 

 

 

히스기야.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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