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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루이스의 헤아려본 슬픔 본문
C.S. 루이스의 ‘헤아려본 슬픔’
- 옥스퍼드의 영문학과 교수였던 그가 암으로 아내 죠이를 잃고 나서 고뇌하며 적은 그의 기록기
- 대표작 : 순전한 기독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나니나 연대기 등
비탄이 공포와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을 나에게 일러준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붉게 달아오른 기억의 전율이 나를 엄습하고 나면, 이 모든 ‘상식’은 용광로 속에 들어가 있는 한 마리 개미처럼 삽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비탄의 나태함에 대하여 나에게 말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그렇고, 신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극도의 불안한 증세 중의 하나이다.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그래, 신이란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그래, 이것이 바로 그의 참된 모습이다. 더 이상 네 자신을 기만하지 말라”는 것이다.
“치통과 불면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나는 치통으로 하룻밤을 꼬박 지새웠다”는 문장을 읽은적이 있다. 정말로 그렇다.
우리는 단순히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비탄에 빠져 있는 자는 나병환자처럼 특별한 지역에 격리시켜 놓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암, 암 그리고 또 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아내 그 다음은 누구 차례인지 궁금하다.
죽음은 존재한다. 그리고 중요하다.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일에는 결과가 따르고, 죽음과 그 결과는 결코 되돌이킬 수도 없고 철회할 수도 없다.
그녀는 죽었다. 이 말은 배우기가 그토록 어려운 말인가?
만약 당신이 종교의 진리에 대하여 나에게 말한다면, 나는 기꺼이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리고 종교의 의무에 관하여 말한다면, 나는 다소곳이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위안에 대하여는 나에게 말하지 말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당신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당신을 의심할 것이다.
고양이는 자신을 수술하려는 자에게 으르렁거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를 물어뜯을 것이다. 진짜문제는 고양이의 수술자가 수의사냐, 아니면 생체 해부학자냐 하는 질문이다. 내가 나 자신의 고통을 생각할 때면 나는 신이 수의사임을 믿을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고통을 생각할 때면 그렇게 믿기가 훨씬 더 어렵다.
'헤아려본 슬픔'의 인상적인 구절들을 위와같이 인용해 보았습니다.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너무도 쉽게 위로를 건네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때는 말없이 그들의 울음에 동참해 줄 수 있는 것이 작은 위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앞에서 기도하고 부르짖는 시편의 안타까운 기도들, 그것은 하나님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입니다. 분명 하나님은 계시지만
실존적으로 고난중에 그분이 느껴지지 않을때 애타게 찾는 울음입니다.
아기가 잠시 눈에 엄마가 보이지 않아도 울어대듯이, 우리는 우리의 고난중에 하나님의 손길이 당장 느껴지지 않으면 그렇게 우리영혼의 아버지께 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김광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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