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e Like Glacier 빙하처럼 움직여라!

우리가 구할 것 - 김광영 본문

로고스의 창

우리가 구할 것 - 김광영

시애틀항해일지 2010. 2. 3. 06:43

 

 

 

 

(마 6:31-33)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시대의 모습

 

예전시대를 생각하면, 우리시대는 분주하지 않게 살기가 참으로 힘들다.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도 쉬지 못하는 시대이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 진급하는 아들녀석에게 '한학년 올라 가는 것이 좋으냐?'고 질문하니, '아니요, 더 공부할 것이 많아지쟎아요'라고 말한다. 아이들도 바쁘고, 어른도 바쁘다.

 

뿐만아니라, 우리시대, 바쁘다는 것이 이미 신분의 상징처럼 되어져 버렸다.

바쁘다는 말과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는 것이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생산지향적인 우리사회에서 바쁘다는 것, 할일이 많다는 것이 자신을 확인하는 중요한 방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인을 더욱 속박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걱정이다.

이것은 '만약'이라는 것으로 꽉 차있는 것이다.

'만약, 신종플루에 걸리면 어쩌지?' '만약, 직장을 잃으면 어쩌지?' '만약, 쓰나미나 지진이 일어나면 어쩌지?'

이런 것들에 대한 걱정으로 우리는 참된 내적 자유를 얻지 못한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는 삶속에 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정신이다.

 

우리사회는 일에 매여 있도록 부추길 뿐 아니라, 이런 걱정과 염려에 사로 잡히도록 부추긴다.

신문, 방송, 인터넷 뉴스들에는 끊임없이 절박한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다.

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 끔찍한 사건들, 잔인한 범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이 우리를 불안으로 몰아 넣는다.

또한, 이런 뉴스들 가운데서도 제일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광고의 홍수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지 않고, 이 영화를 보지 않고, 이 말을 듣지 않고, 이 상품을 구입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몰아 부친다. 광고의 무자비한 폭력이다.

 

세상은 그렇게 수많은 걱정들을 던져주며, 우리 삶을 바쁨으로 채워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렇게 걱정거리에 시달리고 삶에 지치도록 바쁘면서도 우리는 불만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다.

 

오늘날 걱정한다는 것은 수많은 일들에 매이고 거기에 몰입하고 있지만, 동시에 따분함과 원망과 지독한 고독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걱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그것이 우리의 삶을 조각조각 분열시킨다는 것이다.

바쁘면서도 따분해 한다. 온갖 좋은 상품들이 가득하면서도 우울해 하고, 삶을 주도해 가는 듯 정신없이 살면서 원한에 사무쳐 있다.

 

따분함이다. 수많은 일에 분주하지만, 왜 그토록 바빠야 하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열심히 일하지만 마치 자동차 바퀴가 겉도는 듯이 내 삶이 충일함을 느끼지 못하고 따분해한다.

 

이 따분함이란 원한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이렇게 바쁘지만, 이용당하고 조종당하고 착취당함으로 바쁨을 느끼고 있다. 우리삶이 마치 과업을 이루어내어야 하는 기계처럼 조종당한다고 생각할 때, 분노가 내면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그러면서 때때로 우울감이 찾아온다. 차라리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더 낫게다는 생각이 침투한다. 우리를 지독한 죄책감으로 몰아간다.

 

따분함, 원한, 우울 이 모두가 관계의 단절에서 비롯된다.

 

우리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다. '정말로 나에게 진실한 마음을 써주는 사람이 과연있는가? 나의 내적 소외감을 제거해줄 사람이 있는가? 내가 함께 있으면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는가?'

 

무력감을 동반하는 이 격리감이야말로 인간이 겪는 고통의 핵심에 해당한다.

우리는 스스로 소속되어 있는 자리를 알면서도 여전히 집 없는 사람처럼 여기저기 계속해서 끌려다니고 있는 것이다. 마치, 주소를 가지고 있지만, 그 주소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런 현대사회에서 우리에게 돌파구는 있는가?

걱정에 찬 우리 삶에 대한 주님의 응답은 있다.

주님은 우리 삶을 형성하는 수많은 사건들, 활동들 사람들로 부터 우리를 떠나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것과 단절하고 어디 기도원이나 수도원에 머물라고 하시지 않는다.

 

도리어 우리에게 무게의 중심점을 이동시키라고 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삶을 '많은 것들'에서 '필요한 한 가지 것'으로 옮겨가기를 원하신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마음의 변화이다.

이 중심점은 과연 무엇인가?

 

오늘 본문이 이것을 말하고 있다.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우리의 삶에 중심점이 바로 그곳에 있다.

 

 

* 헨리나우웬의 <모든 것을 새롭게>를 읽으며 그 말씀을 우리 현장에 적용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