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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가 - 숨겨진 영웅들을 생각해보다. 본문
우리시대에 조선시대에 왜구와 싸워 승리한 이순신 장군처럼 잘 알려진 역사적 영웅도 있지만, 잊혀진 숨겨진 영웅들도 많다.
일제 강제합병 100주년 광복 65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민족과 시대의 위기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숨져간 숨겨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전의 한 방송매체에서 '숨겨진 독립투사'의 사진에 관한 내용을 올렸다.
그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참전하기 전에 찍은 사진 외에는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어 그를 아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한다.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nFSYfL9_Ff4$
(지식채널e - 잊혀진대한민국4의 영상이다.)
한국전쟁 60주년의 이름도 없이 숨져간 수많은 이 땅의 젊은이들과 그들의 숭고한 희생도 다시금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거문도를 방문하면서 처음으로로 녹도만호 이대원장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선시대 우리나라에 이런 숨은 순직한 장군이 있었음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위한 <애도가>가 이렇게 전해지고 있다.
"어허 슬픈지고 녹도만호 이대원은
다만지 나라위해 충신이 되었도다.
배가 바다로 들어갈제 왜적들은 달려들고
수사는 물러가니 백만명 진중에서
빈주먹만 휘둘렀도다."
녹도만호 이대원 장군은 서기1566년(조선 명종 21년) 경기도 평택에서 출생해 18세에 무과에 급제한 뒤 21세에 승진,
녹도만호(현 고흥군 녹동)에 부임하여
다음해 2월 10일 왜적이 고흥 연안 섬에 출몰하고 있다는 보고에 접한 전라좌수사가 이장군을 출전시켜 이장군이 큰 전공을 세우자 그 전공을 돌려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이에 앙심을 품은 좌수사가 왜적이 또 침입하자 손죽도 앞바다에 나가 싸울 것을 또다시 명령하였고,
이 전투에서 지원군 없이 3일 동안 악전고투 하였으나 끝내 왜적의 화살에 맞아 순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피해만 클뿐 당할 도리가 없어 대세를 각오한 이장군은 속적삼을 벗어 손가락을 깨물어 절명시를 써서 집안 종에게 부탁하여 고향 본가로 전하게 한 것이 오늘까지 전하고 있다.
장군의 절명시(絶命詩)가 이렇게 전해진다.
“진중에 해 저문데 바다 건너와 슬프다.
외로운 군사 끝나는 인생 임금님과 부모님께 은혜 못 갚아
원한이 구름에 엉켜 풀릴 길 없네.”
이대원 장군 동상은 2001년 12월 8일(토) 오전 11시 삼산면 손죽리 산 1552번지에서 제막식을 갖게 되었었다.
이대원 장군 동상은 좌대를 포함 높이 5.5m(동상 2.5m, 좌대 3m)로 남해의 먼바다를 호령하며 구국의 일념으로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이대원 장군의 드높은 기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임란 직전의 왜변란과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앞장선 고흥 1관4포의 수군진성 관민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널리 기리고자 당시 녹도 만호의 직을 수행하다 전사하여 녹도 쌍충사에 모신 이대원제독(손죽도해전 전사)과 정운제독(부산포해전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4월 30일 이름 기념하는 행사가 해오고 있다고 한다.(2009년)
그나마 이런 분들은 그래도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시대와 시대를 넘어 살신성인의 귀감이 되고있다.
하지만, 잘 알려진 인물들 너머로 가려진 역사속의 진실한 영웅들을 다시 찾아볼 수 있는 눈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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