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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김광영 목사> 본문

Church Story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김광영 목사>

시애틀항해일지 2011. 2. 20. 17:06

 

 

 

캄보디아 해외봉사

이야기

 

 

캄보디아 호산나학교에 유치원아이들이 출석하고 있으니, 부모들 중에 와서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심에서는 아이들을 재활용품을 줍게하여 돈벌이도 시킬 수 있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One Dollar'를 구걸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유치원에 보내는 것이 경제적인 손해라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를 안고 구걸하는 사람들을 중앙시장인 central mart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과연, 캄보디아의 현실을 만나보니 그러했다. 호산나 학교가 10년전에 처음 세워졌다는 ‘써떵미멈츠이’ 마을을 가보니 마음이 쓰렸다. 문을 두드리며 무슨 말로 인사해야할지 물어보니, 그곳에는 문이 없다고 했다. ‘써떵미멍츠이’라는 이름 뜻이 ‘승리가 있는 시내’라고 하지만, 우리가 만난 그곳은 그 이름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가난한 빈민가였다.

 

 

 

 

 

 

수상가옥이라는 말도 있지만, 부서질듯 빈약한 나무를 대어 나무집을 지었고, 그 아래는 온갖 오물과 쓰레기가 가득했고, 악취가 입구로부터 코를 찔렀다. 그 위에 사람들이 살고 아이들이 뛰어 다니고, 생활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캄보디아인들이라면 누구든지 좋아하는 ‘끄라우마’라는 다용도 머플러를 전도지와 함께 선물했다. ‘끄라우마’는 손에는 수건, 머리에는 두건, 허리에는 앞치마, 옆으로 매면 애기띠도 된다고 한다. 이렇게 그들에게 작은 선물과 함께 전도지를 건네니 해맑은 웃음으로 때묻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었다. 건기에는 그나마 오물들이 아래로 내려왔지만, 배수시설이 전혀되어있지 않는 그곳에 우기가 되면 거의 마루까지 차오른다고 하는데 그곳의 자녀들에게 푸른 꿈을 심어주는 곳이 호산나센터였다.

호산나센터가 그곳에 지어지면서, 유치원이라는 곳을 처음온 아이들은 3층건물에 처음 올가 보고서 자신이 오른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자신의 마을 처음 내려다 보며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롭게 갖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시끄러운 기계음이 돌아가던 철공소가 옆에 있었고 300여명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면서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모른다고 한다.

 

이젠 호산나센터도 프놈펜의 공항옆으로 옮겨졌고, 아이들도 트럭을 타고 ‘쓰떵미멍츠이’빈민가에서 여기까지 등하교를 한다. 호산나학교에서는 배움의 터전에서 내일을 꿈꾸는 캄보디아 아이들이 보인다. 콩나물 시루같은 교실에서 나와 자기네들끼리 즐겁게 놀고 트럭과 봉고가득 주렁주렁 매달리듯 타고 학교를 나가는 아이들이다.

감사한 것은, 빈민촌과 학교를 오가던 포터트럭 때문에, 기도하고 고민 중이었는데, 우리가 오가는 과정을 통해서 25인승 통학버스가 구입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우리에는 아직 어색한 캄보디아말인 크메르와 영어를 섞어가며 이름을 묻고(츠무어 어붜이) 나이를 묻고(아유 뽄만) 사는 곳을 묻는다. 그들과 우리사이에는 어떤 간격이 있는 것일까? 60-70년대 우리나라보다 더 잘 살았던 이 땅이다. 한국전쟁때는 물자로 우리나라를 지원할 만큼 잘 살았다. 하지만, 이젠 우리가 이 땅에 와서 물자를 나누고 꿈을 나누고 복음을 나누어 주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과거의 모습을 공유하고 있기에 더욱 마음이 아픈 땅이다.

언젠가 이들도 더 어려운 나라를 돕는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아프리카의 어려운 나라를 돕고싶다는 꿈을 가진 한 아이에 대해 정순영선교사님이 들려주셨다.

참으로 상상이 안되지만, 우리나라에 추위가 맹위를 떨칠때, 우리가 공항에 내렸을때, 정선교사님은 29도라고 했고, 말하지 않아도 불빛 주위를 맴도는 모기떼들과 더위가 그 땅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이 비치고 오전에 봉사일을 끝낸 봉사자들이 식사를 하고 잠시 쉬고 있었다. 우리는 악취나고 모기들의 아지트가 된 화장실 뒤편 정화조의 쓰레기와 나무들을 다 걷어내었다. 특히 이곳 모기중에는 댕기 모기가 있어, 댕기열 말라리아를 유발하는 모기들이 있기에 모기에 물리는 것이 굉장한 주의를 요했다. 그런 모기의 온상지를 없애야 했다.

학교문앞에 쓰레기중 재활용할만한 것을 실어가기위해 어디선가 한 현지여성이 리어카를 끌고나오셨다. 학교의 오래된 철제간판과 철대문, 나무문을 날라다가 쌓아 놓았다. 책상을 하나 버리려 했는데, 여기서는 볼트와 너트도 귀하니 그냥 버리시면 안된다고 해서 박영미 권사님은 나무에서 볼트 너트를 분리하는데 한참을 시간을 보내셨다.

우리나라에서는 쓰레기 분리수거, 구청에 신고하면 처리비용까지 물어야 하는 가구들을 이곳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어디 버릴 것이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돈까지 내면서...

모기들 날리던 정화조 자리는 돌을 옮기고 주변의 돋아진 흙을 다 파내어 메우니, 멋진 야주수가 있는 깨끗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힘을 합친 한나절의 노동이 이곳의 환경을 쾌적하게 바꾸어주고 있다. 수업을 마쳤는지 중간에 나와는지 현지 아이들 열댓명과 남은 공간을 메우는 작업을 함께했다.

이곳에는 배수시설이 없다. 건기가 끝나고 우기가 시작되면 프놈펜 온 도시가 물에 잠긴듯 될 때 이곳도 물이 흔근히 고일 것이다. 우리의 수고가 그 우기때에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캄보디아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오물 때문에 아름다운 야자나무도 오물처럼 취급되었다. 하지만, 주변의 환경을 깨끗하게 정리하니 그렇게 푸르고 수려한 야자나무가 없었다. 캄보디아인들속의 95%인구비율을 차지하는 불교와 또 샤머니즘. 그리고 킬링필드의 아픈 역사를 복음으로 치유하면, 그들속에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이 그렇게 푸르디 푸른 야자나무처럼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방문한 ‘뚤슬랭’의 폴포트 공산정권시절의 감옥은 아픈 현대사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1975-1979년 사이에 800만 인구 중 1/4정도를 학살했다는 흔적은 캄보디아 온 땅은 덮은 해골로 상징되고 있다. 감금소와 고문현장, 그리고 그림전시등이 있었는데 참혹한 아픔의 현장이었고, 이곳에서 살아난 생존자 4명중 한명이라는 생존자가 자신의 잘려나간 손가락이 있는 손을 보여주며 그 아픔의 역사를 방문자들에게 증언하고 있었다.

이곳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고등학교였는데 정치범 수용소에 고문의 현장이 되었다. 배움을 받아야할 15세의 소년들이 총과 둔기를 들고 그들의 선생과 지도자들을 고문하고 학살하는 자리였다.

 

2010년 7월 23일 프놈펜 포스트 (The Phnom Penh Post)은 폴포트 밑에서 뚤 슬레일 감옥 소장이었던 ‘깡 껙 에우’, 일명 두츠(Dich)의 재판을 보도하였다. 그는 35년간 징역형을 받았다. 그가 소장으로 있을 때 죽은 사람이 무려 12,000명에서 14,000명으로 추산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1996년까지 그는 고향에서 가명을 써서 자신을 숨기는 데 성공했다. 1996년 미국에서 돌아온 캄보디아 출신 목사의 집회에 참석했다. 그는 설교를 들은 후 목사에게 “나 같은 죄인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물었다. 목사는 “예수믿고 세례를 받으십시오” 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로부터 그는 3년후 체포되었는데, 정직하게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였다. 그러나 재판을 기다리는 4명의 지도급 인사들은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다고 보도한다.

이렇게 복음은 킬링필드의 범죄자에게도 솔직한 자기잘못을 인정하게 하는 힘을 주었고, 사회의 역사가운데 책임질 수 있는 정직성을 가져다 준 것이다.

 

현재 캄보디아는 1980년대 이후 출생한 현재 30세이하의 청년인구가 전체국민 75%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렇게 너무도 많은 인구 대학살이후 출산장려 정책으로 태어난 세대라고 한다. 이제 이 질곡의 아픈 역사에서 태어난 세대는 그들의 부모 세대와는 다른 자본주의 경제의 급속한 유입속에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다.

마땅히 받아야할 인격과 삶에 대한 공부보다 달러를 벌기 위해 그들의 학업기를 보내고 있다. 이제 캄보디아는 새롭고 변화하고 있다. 구호단체의 도움으로 일관하는 이 땅에 외부의 투자자본들이 이젠 유입하고 있다. 현재 캄보디아의 가장 높은 건물은 프놈펜의 42층 건물이다. 이 곳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유출된 자본이 캄보디아에 투자자본으로 세운 건물이라고 한다. 곳곳마다에 새로운 건물들이 속속히 들어서고 있다.

거리 한가운데 총을 녹여 구부러진 총모양을 지닌 상징탑이 있는데, 폴포트 정권같은 피비린내나는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자 다짐하지만, 캄보디아는 새로운 시장경제의 전쟁터가 되어지고 있다.

현재 캄보디아는 남한 2배의 땅에, 1400만인구이다. 수도 프놈펜은 한때 200만의 인구가 있었으나 폴포트 독재정권시절 농촌이주 정책으로 10만정도만 남은 유령도시가 되었다가 현재는 140만 정도 거주한다.

캄보디아는 경제발전속도가 빨라 보이나 아직도 저개발 국가로OECD의 원조를 받고 있다. 국민 1인당 연간소득 640불(2008, World Bank). 전인구의 30%가 하루에 1불이하로 생활하고 있는 절대 빈곤층로,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중 하나이다. 80% 사람들은 전기와 수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살고 있다

그나마 도심에서는 제일 페이가 많은 직업이 은행원인데 월 300-400불을 받는다고 한다. 캄보디아의 제조공장인 방직공장에서는 월 70불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도심의 3/1정도의 국민은 집이 없다.

 

캄보디아 노동부의 통계에 의하면 2006년 이후 한국에 입국한 캄보디아 사람이 7천명가량된다고 한다. 태국과 말레지아에 가면 월 150-200불을 받고, 한국에 오면 800-1000불은 받으니 한국행은 곧 엄청난 외화수입과 가정경제에 엄청난 변화를 주는 것이다. 한국노동자로 입국하기 위해 한국어 시험을 치루는데 600명 모집에 2만4천명이 지원했다는 이야기를 왕궁옆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박재희교수를 통해서 들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코리안 드림이 캄보디아에는 살아있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에서도 한국음악이 나오고, 드라마가 나와서 한국인들이 와서 그렇게 틀어 주나 했더니, 이곳은 한류문화에 큰 영향을 받고 있었다.거리에 오토바이들이 질주하는데,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짧은 바지를 입은 여성들이 많았다. 이곳은 불교의 나라여서 이런 옷차림은 있을수가 없는 나라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의 걸그룹 소녀시대가 힛트를 치면서 그렇게 짧은 바지가 젊은 여성들 사이에 전통을 부수고 유행한다는 것이다. 이곳에 한류와 함께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전통적 불교국가에 복음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늘어, 최근에는 년 40만명가량 한국인이 찾는다고 한다. 한국인 거주자도 수도 프놈펜에 3000여명인데, 선교사가 300명정도 되고,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립이라는 지역에도 800명이 거주하고 있다.

한국과 캄보디아는 멀리있지만, 가까운 나라가 되어져 가고 있다. 한국인들에 대해서도 좋은 인상도 가지고 있고, 캄보디아 화폐 리엘이 있지만, 달러와 함께 우리 돈 천원도 유통되는 아주 특별한 나라이기도 하다.

 

캄보디아를 과일에 비유하자면, 이 땅에서 나는 과일의 여왕이라 불리우는 ‘뚜리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뚜리안의 특징은 냄새가 엄청 지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냄새를 뚫고 과일을 맛보면 전혀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된다. 처음 먹을 때는 적응하기에 힘들지만, 두 번째 부터는 한번 맛본 사람은 뚜리안을 다시 찾게 된다. 킬링필드의 아픈 역사와 OECD의 원조를 받는 가난한 국가지만, 이러한 선입견을 걷어내면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된다. 캄보디아 국기를 본적이 있는가? 국기에는 9-15세기에 동남아시아의 패권을 자랑한 앙코르 제국의 상징 앙코르 와트가 선명하게 새겨져있다. 그들은 그들의 선조의 화려했던 영광을 재현할 가능성을 그들의 가난 속에서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우리는 소망한다. 캄보디아가 격변의 변화 속에 매일 쑥쑥 자라나는 죽순처럼 년 10%의 성장을 이루며 새롭게 커가고 있다. 이 땅의 75%를 차지하는 젊은이들을 복음으로 변화시키고 예수그리스도안의 소망을 갖게 된다면 엄청난 성장 가능성을 가진 땅이다.

앙코르 시대의 영광을 바라는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영광을 바라보며 복음가운데 수고하는 호산나학교의 정순영선교사님과 300여명의 선교사들을 통해 이뤄지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기회가 될 때, 캄보디아해외봉사를 통해 이들의 사역에 힘을 함께 실어주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