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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 설교 삼상 3장 주여 말씀하옵소서 / 김광영목사 본문
1. 말씀이 희귀한 시대(1절)
사무엘이 살던 시대적 모습은 어떠한가?
본문의 말씀처럼 사무엘의 어린 시절은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는 시대였다.
이 사시시대는 그 때에 왕이 없으므로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던 이스라엘의 가장 흑암의 시대였다. 하지만, 사무엘은 그 시대 속에서 빛나는 인물로 기억된다.
이 때에 어린 사무엘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엘리의 지도하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서 사사로서의 역할을 배워가고 있었다.
2. 사무엘을 부르시는 하나님(2-10절)
사무엘이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다고 했는데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전에서 먹고 자고, 배우고, 일하고, 경험하고, 영적 훈련과 신앙훈련이 잘 되었다는 말이다. 그는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1절)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다.
사무엘이 이 자리에 누워자기까지의 이야기를 추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한 아버지와 두 어머님의 가정, 한마디로 결손가정출신이다. 그의 어머니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한 상처를 가진 여인이었고, 그의 기도의 응답 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이 사무엘이다. 그는 젖을 떼자마자 어머니의 서원대로 성전에 바쳐졌다.
1:24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이 그것을 기록하고 있다. 젖 뗄 나이가 어느 정도인가? 일찍 떼는 경우도 있겠지만, 3-4살 정도의 영아부 시절에 젖을 떼고 성전에 바쳐졌을 것이다. 2:19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올라갈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다’고 했다. 작은 겉옷을 입을 정도의 나이는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성전에 바쳐졌다고 해서 거룩한 성전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겠지만, 사실 그 당시의 성전에는 2명의 깡패가 있었다. 바로 엘리의 두 아들 이었다. 그들은 2:12 ‘그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예전 개역성경에는 그들은 ‘불량자’라고 표현한다.
사무엘이 어린시절에 성전에서 이들에게서 본 2가지 사건이 기록되어있다. 2:13-17절이 그 내용이다.
제사를 번제로 드리고 제사장 몫으로 제물의 우편뒷다리를 가졌다. 그러나 살진짐승은 자신들이 갈고리를 가지고 자기 것으로 취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장의 사환에게 와서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않고 날 것을 원하신다’ 했다가 ‘먼저 기름을 태운후 네 원하는 대로 하라’ 말하면 억지로 빼앗아 와버렸다.
2:22-24에 보면 엘리가 그의 아들들이 행한 일을 듣고 아들들에게 말한다. 그 내용인즉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한 것이다.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을 겁탈하기도 했던 것이다.
상상이 됩니까? 어린 사무엘이 성전에서 본 것은 도둑질이었고, 타락의 극치와 불경스러움이었다.
하지만, 사무엘은 그런 환경에 물들지 않았다. 2-3절의 내용처럼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한 것이다. 2: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하나님의 사람은 환경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릇된 신화속에 살아간다. 인생의 승패는 환경에 관련되어있다. 환경이 물론 영향은 주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만일 환경이 인생을 만든다면 좋은 환경에 자란 사람은 다 잘되어야 한다. 하지만, 빗나가는 아이가 잇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정말 잘되는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난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환경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역경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 환경이 바뀌는가? 불치병도 안수기도면 모두 낫고, 직장 없던 사람이 직장도 생기고 돈을 잘 벌게 되는가? 예수 믿으면 다 장학금 받고 좋은 대학 다니는가? 예수 믿으면 환경이 다 바뀌는 것이 아니고, 환경을 초월할 수 있는 소망과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무엘이 보여준 것은 환경이 바뀌는 것이 아니었고, 불의한 환경에 물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면, 사무엘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1:28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2:11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2:18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3: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사무엘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동행하는 삶을 어린나이에도 살아 갔던 것이다.
그가 시대적으로 환경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멋진 모습으로 성장해 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이 붙잡으시는 은혜 때문이었다. 사무엘의 삶에 악한 모습이 침투할 수 없었던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사도바울도 ‘나의 나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지 않는가?
하나님의 은혜 이 끈이 없으면 우리는 죽는 것이다. 연이 아무리 화려하게 날고 있다고 할찌라도 가위로 실을 끊어 버리면 바람에 날려 어딘가에 곤두박질 치고 만다. 우리도 하루 아침에 추락할 수 있다. 우리 평생을 통해 일구어 놓은 것들이 어디 우리가 만든 것인가?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줄로 우리를 채우시고 지탱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은 이 은혜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머니의 기도의 응답으로 태어난 아이이며 하나님께 드리진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또한 사무엘이 성전을 중심으로 살았던 삶에서 교훈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교회생활과 동일시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평범한 삶이 하나님을 위한 신앙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생활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신앙으로 모이기에 힘쓸 때 우리 믿음은 자라가기 마련이다.
딤전4:7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했다. 우리교회는 이러한 경건훈련을 하기 위한 모임으로 제자훈련, 일대일양육, 크로스웨이, 새가족공부, 알파, 다락방, 수요예배와 기도회 등이 있다. 우리는 얼마나 이 모임을 신앙의 공동체성과 유익을 위해 참여하고 있는가?
이렇게 여호와의 전에 잠든 아이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진다.
사무엘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며 엘리에게로 나아가는 민감함을 보이지만, 엘리는 이 음성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알지 못하고 다시 누우라고 말하는 둔감함을 보인다.
마4:9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 시대에 나에게 말씀하는 하나님의 세심하신 음성에 얼마나 깨어있는가? 예배의 말씀에 집중하는 일이나, 개인 묵상과 기도생활은 어떠한가?
3번째 동일한 부름을 받고 사무엘이 엘리에게 나아가자. 엘리는 8절에 보니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 깨달았다.’ 이번에 사무엘은 엘리가 시킨대로,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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