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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12-17 버가모교회 본문
제목 :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본문 : 계2:12-17
김광영 목사
※ 마음문을 열며
우리가 아무리 깨끗한 옷을 입는다고 해서 옷이 더러워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온갖 먼지와 오염물로 가득한 거리를 한나즐 거닐면 더러워 지기 쉽상이다.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다. 교회에서 말씀으로 정화되고 기도로 깨끗해 지지만, 세속가운데 믿음이 타협되고 변질되기 쉽다. 우리가 어디에 살고 계신지 주님은 알고 계신다. 양떼를 이리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주님 말씀하셨다. 버가모교회의 모습을 통해 세상속에서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기를 원한다.
※ 본문과 씨름하며
1. 버가모와 버가모 교회
버가모라는 단어는 헬라어 ‘페르가메네’에서 온 것인데, 여기서 ‘파취먼트’(양피지)라는 말이 유래 되었다. 왕이 이집트 북부 알렉산드리아보다 더 나은 도서관을 버가모에 세우라고 명령했다. 이집트왕은 이것을 알자 기분이 상했고 종이로 쓰이던 파피루스를 버가모로 수출하지 못하도록 명했다. 파피루스를 구할수 없자 유메네스 2세는 파피루스를 대치할 양피지를 개발하도록 명령하고 버가모에 20만권의 장서를 갖춘 도서관을 만들었다. 버가모에는 이방 신전이 있었는데 특히 제우스 신전이 있었고, 황제숭배를 위해 신전을 지은 첫도시로 유명했다.
2. 사단의 위
이러한 버가모에 ‘사단의 위’ 즉 ‘사단의 보좌’가 있다고 했다. 여기 ‘사단의 보좌’는 로마에 의해 조종되는 자들의 종교적 박해를 말하고 있다. 버가모는 사단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저항하는 저항 본부가 있는 곳이다. ‘황제가 주님이시다’와 ‘예수가 주님이시다’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곳이다.
주님은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안다’고 말씀하셨다. 황제 숭배를 피할 수 없는 곳에 버가모 교회가 살고 있음을 아신다는 것이다. 버가모 교회는 황제숭배센타에 단기 체류하고 있는 자들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자들이다. 주님은 이러한 그들의 상황을 아신다고 위로하고 있다.
그리하여 주님은 그 교회에 특별히 안디바라는 신자를 거명하셨다. 그를 가르켜 ‘내 충성된 증인’이라고 하셨다. 박해의 폭탄이 떨어지면 도망가기 바쁜 것이 현실인데, 버가모 교회는 (1)주님의 이름을 굳게 잡을 뿐 아니라, (2) 주님의 신실한 증인 안디바가 순교 당할 때에도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주님의 이름을 굳게 잡는다는 것은 ‘황제가 주님이다’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는 것을 굳게 잡고 놓지 않는 것을 말한다.
3. 타협한 교회
버가모교회는 순교자를 낸 교회였고, 순교자반열에 동참한 교회였다. 그만하면 칭찬할 만한데 주님은 책망하실 것은 주저없이 책망하셨다. 버가모교회는 밖으로 부터의 핍박은 이겼으나 안으로 부터의 유혹에 넘어간 교회였다.
주님은 교회안에 발람의 교회을 지키는 자들,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의 지적하시며 책망하셨다. 발람은 모압여인들의 미인계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우상의 재물을 먹게하고 행으미케 했는데(민22,25장) 이러한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버가모교회안에 있었던 것이다.
에베소 교회와 비교해 보자 에베소교회는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6)’ 버가모 교회는 ‘이와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15) 에베소교회는 바른 교리를 엄격하게 지키면서 이단을 폭로하면서 첫사랑을 상실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으나 버가모교회는 사랑의 이름으로 이단 니골라당을 용납한 것이다.
버가모교회는 진리의 흰옷을 음행의 흙탕물로 더럽힌 것이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그거 뭐 잘못되었나? 다 그렇게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것 뭐 있나?’ 이런 태도가 버가모식이다. ‘진리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사랑 뿐이다. 훈계는 하지 말고 항상 관용을 베풀어라’ 이것이 버가모식 태도다. 이것은 진리를 떠난 사랑으로 미워해야할 세상을 품고 뒹구는 것이다. 교회가 일단 이런 사상을 용납하면 그것이 암처럼 교회 전체에 퍼지게 된다.
4. 경고와 약속
주님은 버가모교회의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고 하셨다. 주남운 이렇게 단호한 경고를 발하실뿐 아니라 이기는 자들에게는 상급을 약속하신다. ‘이기는 그에게는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17) ‘감추었던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신 주님자신이다.(요6:51) 버가모의 니골라당은 더러운 우상 제물을 먹었지만 주님은 이기는 자들에게 주님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제공하신다는 것이다.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게 하신다는 것이다. ‘흰돌’은 공식 연회에 참석할 수 있는 티켓으로 사용된 돌이다. ‘새이름’은 돌을 가진 자에게는 주어지는 이름이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는데, 어느 것이든 메시아 잔치에 확실하게 참석할 수 있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다.
※정곡을 콱 찌르며
우리는 적대적인 환경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환경에 살면서도, 혹시 우리가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따르며, 혹시 그 가르침에 타협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유혹이 되는 니골라당은 무엇인가? 자신의 감당할 수 없는 욕망을 채움받기 위한 것인가? 남의 이목을 끌고 싶은 욕심인가?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해서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것인가? 예수님을 시험한 사단은 우리도 유혹하고 시험한다. 주께서 말씀으로 그것을 이기신 것 처럼 좌우의 날선 검인 주의 말씀으로 그것들을 단호히 거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싸움이다. 믿음으로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주님과의 더 깊은 교제와 구원의 확실성의 상급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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