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e Like Glacier 빙하처럼 움직여라!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하나님 본문

로고스의 창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하나님

시애틀항해일지 2009. 2. 12. 10:08

창세기 45:1-15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하나님(8절)

12 FEB 09새벽설교

Pastor Kwangyoug Kim

 전문맥

- 요셉은 유다와 대화하며 형제애를 확인하게 된다.

요셉은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 은잔을 계기고, 그를 종으로 삼으리리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여기에서 유다의 행동에 주목하게 된다.

유다는 아버지 야곱에게는 자기의 아이를 담보하며, 베냐민을 데려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를 짓겠다고 한다.

요셉에게는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보내소서.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께 미침을 보리이까?

 

이복동생 베냐민을 위해 자신의 아이를 담보하고, 요셉에게 자신을 볼모잡히게 하는 유다의 모습이다.

예전에는 자식들을 향한 아버지의 편애에 강한 불만을 품었던 유다가 아버지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게 되었다.

 

1. 요셉의 방성대곡(1-2절)

 

요셉은 유다를 통해, 형들이 예전에 자신을 무정하게 상인에게 팔아넘기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시종 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를 지른다.

‘모든 사람에게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요셉이 방성대곡하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렸다.

요셉의 감정의 응어리가 풀려지는 방성대곡의 장면이다. 요셉의 울음소리가 바로의 궁중에까지 들릴정도로 격한 것이었으니, 그가 오랜 세월품었던 아픔이 어떤 것이었는지 보여준다.

 

2. 형들을 안심시키고, 하나님의 섭리를 말함(3-8절)

 

귀향길에 오르게 될 형들에게 요셉은 말한다.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나를 이리로 보낸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요셉은 자기의 과거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의 불행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는가?

하나님앞에서 어찌 득죄하리요 했던 그가 하나님 안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요셉은 과거를 잊을 수는 없었지만, 과거에 발목 잡혀 살아가는 삶은 아니었다.

요셉은 17세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 22년간 파란만장한 세월을 살았다. 그 삶은 복수의 칼을 가는 삶이 아니었다. 에서처럼 야곱을 향해 칼을 가는 그런 세월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이기고 분노와 상처를 이기며 먼 타향에서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자신을 보고자 했던 것이다.

깊은 원한의 세월을 보낼법한 그가 어떻게 화해와 용서를 선택할 수 있었나? 자신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 형제들과 화해하는 요셉(9-15절)

 

흉년이 아직 5해가 남아있어, 요셉이 아버지와 가족과 속한 모든 사람들을 봉양하겠다고 약속한다.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운다.

우리앞에 놓인 상황을 어떤 시각과 태도로 바라보아야 할까?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 나오며

 

인간은 문제투성이다. 시기와 질투, 욕망과 야망, 좌절과 기쁨 등이 어우러져 부딪히기에 우리 사회란 안정과 평화보다 갈등과 투쟁이 더 자주 일어나기 마련이다. 우리가 대처해야할 문제는 어떻게 그 쓰라린 추억을 승화시키며 소화해야 하는가이다. 요셉의 형들에게는 요셉에 대한 죄책감이 늘 따라 다닌다. 죄를 품고 사는 일 만큼 양심과 영혼을 갉아 먹는 일이 없다.

 

우리는 모두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누가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주 그렇게 한다. 우리가 거절당하고, 버림받고, 폐기되고, 폭력을 당했다고 느낄 때, 이것은 대부분 우리와 친근한 사람들에 의해서이다. 우리의 부모, 친구, 배우자, 연인, 아이들, 이웃, 선생님, 목사님들 이런 분들에 의해서 말이다. 우리를 사랑하는 그들이 우리에게 상처 또한 준다. 이것은 우리 삶의 비극이다. 이것이 마음으로부터의 용서가 그렇게 어려운 이유이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에 정확한 상처이다. 우리는 외친다. “당신, 나를 위해 거기 있기를 기대하는 당신, 당신이 나를 버렸다. 어떻게 내가 그런 당신을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용서는 자주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불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안에 사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처받은 우리 자신들을 넘어서는 은혜를 주시는 분으로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너는 용서받았다.” 그러한 은혜를 기도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