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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의 나심

시애틀항해일지 2009. 3. 2. 06:30

눅 2:1-11

 

부산중앙교회

사회선교부 김광영 목사

 

1. 천하로 호적하라는 명령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간다.

그런데, 한 가정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

요셉도 이 흐름에 동참하여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간다.

우리는 여기서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 하나에 모든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역시 세상의 황제가 힘이 있구나를 느낀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역사책의 로마 최초의 황제 옥타비아누스인 아구스투스를 말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보면, 그 명령은 이 때를 맞춘 것이었다. 이 때는 전문맥을 보면, 세례요한이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 태어나 광야 빈들에서 자라며 주의 길을 예비할 시점이었다.

그렇다면, 이 때는 바로 메시야의 나실때를 말한다.

구약의 미가 선지자는 미5:2에서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네가 유다족속중에서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네게서 내게 나올 것이라’고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위해, 황제의 명령이 떨어지고 그 모든 상황들이 전개되는 것을 본다.

 

2.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이때 마리아는 어떤 상황이었나?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어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사관에 있을 곳이 없어 구유 말밥통에 누이신 예수님,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그 영광을 버리시고 이토록 낮은 곳에 임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오실 메시야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사53장)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체도 없고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주님은 그렇게 초라하게 오셨다. 육신으로 연약한 모습 가난한 모습으로 오심으로 누구나 그분께 나아올 수 있게 오셨다.

한 제국의 큰 일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으로 요셉부부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놀랍지 아니한가?

이 진정한 세상의 통치자는 누구인가?

가이사 아구스도가 아니다. 세상의 권력자, 돈 많은 기업가, 학자들, 군장성들이 아니다. 바로 하늘의 왕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부요케 하시려고 그 분이 가난한 자리로 오셨다.

그 분은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다.(요1:29)

‘말씀이 육신이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요1:14)

 

3. 천사의 소식을 접한 목자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

그 당시에 목자들은 해야할 일 때문에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모임에 참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요즘 같으면, 먹고 살기 바빠서 휴일도 없이 돈벌이 해야하는 가난한 형편의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밤에 자기 집이 아니라 양떼틈에서 자야했다.

그러한, 그들에게 주의 사자가 곁에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였다.

천사는 외친다.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11절)

 

● 마치며...

 

아구스도 황제는 세금징수와 군사동원을 위해 로마제국 전역에 인구조사를 명령했다.

하지만, 하늘의 왕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히려 자기의 모든 영광을 포기하고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셔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셨다.

마20:28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목자가 베들레헴 가까운데서 남의 양떼가 아니라 자기 양떼를 지킨 것 처럼, 주님은 자기 백성을 저의 죄에서 구원할 자로 우리에게 오셨다.

예수는 바로 자기 양떼를 찾아오신 선한 목자시다.

우리가 주님의 양떼가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것인가?

이 목자들이 예수님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접하는 첫 번째 사람들이 되었다.

 

주님은 가난하지만, 자신의 삶에 충실한 자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찾아오신 것이다.

천사는 찬송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4절)

우리가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으로 그 하나님의 평안을 이 성탄에 누리기를 원한다.

또한, 그 기쁨과 은혜를 경험한 우리는 주께서 섬기시고 낮은 자리로 오심처럼, 우리도 우리곁의 상처나고 아픈 마음들 도움이 필요한 자들의 친구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