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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기를 다투는 자 (고전 9:24-27) - 김광영 목사

시애틀항해일지 2011. 1. 27. 16:16

 

 

새해를 맞아 무슨 책을 읽어볼까 하다가, 서재에 오랫동안 꽂혀있었지만 읽어보지 못했던 ‘마시멜로 이야기’에 손이 갔다. 영어 원제는 ‘Don't Eat the Marshmallow... Yet'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이야기는 ’인내의 과정은 쓰나 그 결과는 달다‘는 격언으로 요약될 수 있다.

미국에 살 때 아이들의 간식으로 하얗고 부드러운 마시멜로를 우유에 넣어 주기도 하고, 또 마시멜로를 뭉쳐 과자를 만들어 먹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달콤한 것이 바로 이 마시멜로이다.

저자 호아킴 데 포사다는 성공으로 가는 길목에 형형색색의 달콤한 마시멜로의 유혹을 잘 이기면, 더 큰 마시멜로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펼쳐주고 있다. 하루하루를 유혹하는 달콤한 것들에 입맛들이기 시작하면 미래를 대비한 착실한 저축은 너무 먼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당장 눈앞의 욕구보다는 더 많을 것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눈부신 시절을 기꺼이 견딘 사람이 바로 청춘을 가장 성공적으로 보내는 것이다.

 

4살짜리 꼬마아이들에게 실험이 시작되었다. 한명 씩 각기 다른 방에서 아이들이 있는데 상냥한 미소의 아가씨가 들어와 마시멜로를 하나씩 놓고 15분간 탁자위의 마시멜로를 먹지 않는다면 상으로 마시멜로를 한 개 더 주도록 할 것이라는 제안이다. 아이들에게 쉽지 않은 유혹이다. 어떤 아이는 먹고, 어떤 아이는 먹지 않아 하나의 마시멜로를 상으로 받았다.

이야기는 10년 후로 넘어간다. 두 종류의 아이들의 삶이 추적되어 그들의 성장과정과 이후의 삶이 통계되었는데 어떻게 되었겠는가? 당신이 예상한 대로이다. 한 순간의 유혹을 참고 견딘 아이들이 학업에서나 친구관계에서 또한 스트레스 관리도 뛰어난 것으로 나왔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우리 가정에 어떻게 실천해 볼까 고민해 보았다. 작년에 아들이 동전을 모은 돼지 저금통이 몇 개 있다. 그것을 오픈해서 동전을 모으고, 한 은행을 방문하여 동전 분리기에 넣으니 지폐로 나오는 것이다. 아이의 눈이 500원짜리 동전만큼이나 동그래진다. 작은 동전들이 빳빳한 초록색 지폐가 되어서 나오기 때문이다. 아이의 이름을 새긴 도장을 파고, 아이의 이름으로 통장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 1년 동안 돼지저금통을 열고 싶은 유혹이 있었겠지만, 잘 참았기에 만원지폐 5장이 손에 쥐어지고, 또 자신의 명의의 통장을 만들게 된 것이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아들에게 절제의 미학과 저축의 기쁨에 대해서 이렇게 은행에서 통장을 만드는 것으로 이 교훈을 적용해 보았다.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NIV>

 

(고전 9:24-27)

『[24] Do you not know that in a race all the runners run, but only one gets the prize? Run in such a way as to get the prize. [25] Everyone who competes in the games goes into strict training. They do it to get a crown that will not last; but we do it to get a crown that will last forever. [26] Therefore I do not run like a man running aimlessly; I do not fight like a man beating the air. [27] No, I beat my body and make it my slave so that after I have preached to others, I myself will not be disqualified for the prize.』

 

 

 

 

작년 말 중국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열광했다. 그 핵심적인 인물 중의 한명이 박태환이었다.

 

거리 50미터

폭 21미터

수영장에서 벌어지는 경기는

서구 선수들의 독무대였다

인간어뢰 이언소프

수영황제 펠퍼스

.....

 

천식을 앓던 5살 꼬마 박태환

치료를 위해 수영을 시작했다

 

수영선수로써 핸디캡이 될 수 있는 천식

그 장애물을 물살과 함께 가르기 시작한 소년

 

중학교 3학년. 15세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4 아테네올림픽

자유형 400m 예선

너무 긴장한 탓에 출발 소리가 나기 전

물속으로 뛰어든 소년

 

결국 헤엄도 쳐보지 못한 채 실격

 

어린 소년은 감독님이 무서워

화장실 문을 잠그고 2시간 동안 눈물을 훔쳤다

 

--

눈물은 최고가 되어가는 성장촉진제

눈물을 닦고 소년은 다시 일어선다.

 

2005년 6개의 한국 신기록

마카오 동아시아 대회 금메달

2006년 아시안게임 3관왕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정상에 오르기는 쉽지만 유지하기가 더 힘든법

 

2009 로마선수권 대회에서 400, 200, 1500m 모두 세 종목에서 모두 결승진출 실패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3관왕

 

오늘 바울선생님은 올림픽 경기같은 경기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100m 경주에서 다 달리기를 하지만, 오직 상 얻는 자는 한명뿐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금메달은 오직 한명 밖에는 얻지 못하는 것이다.

너희도 상을 얻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운동선수가 시합을 앞두고 최적의 체격조건과 컨디션과 실력발휘를 위해 마구 먹지 않고 수면도 조절하고 놀러다니지도 않고 운동을 하는 것처럼, 경기를 포기한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경기에서 이기는 사람은 절제한다는 겁니다.

 

수능시험을 며칠 앞두고, 평소처럼, 아무렇게나 살지않고 책을 보고 공부하기 위해 먹는 것 자는 것 노는 것을 절제하는 것처럼 말이죠! 왜 그렇게 한마디로 사서 고생을 합니까? 바로 승리의 월계관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썩을 면류관입니다. 하지만, 우리

가 붙잡을 면류관은 결코 썩지 아니할 것을 바울은 말해 줍니다.

 

육체의 멋을 부리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옷을 사면서도 우리 영혼이 굶어주고 가고 있는데도 무관심하지는 않습니까? 세상에서 소위 승리자가 되기위해 부지런히 달음질 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부요한 것이 하나도 없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위해 학원을 등록하고 시간을 내고 돈을 내면서도 전혀 아까와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예배드리고 헌금하는 것은 인색하지는 않았습니까?

 

바울선생님은 달리기 선수격투기 선수에 자신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의 달음질이 결코 방향 없이 아무데나 달리는 것과 같지 않고, 다시 말해 한 목표를 향해 전심해서 달려가고 있으며, 싸우기를 허공에다 치는 것처럼 헛 펀치만 날리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대상을 가지고 목표를 가지고 이렇게 전심전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선수처럼 옆길로 샐 틈이 없는 자들입니다. 선수들이 모든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경기에서 우승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절제하는 것처럼, 바울은 자신을 다루는 피나는 자기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27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믿음의 영웅들을 열거한 후에 ‘이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우리가 바라볼 목표는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즐거움을 바라보며 십자가 지는 고통과 부끄러움을 참으신 것 처럼, 우리도 믿음의 경주를 달리자.

 

바울은 이렇게 자기 몸을 쳐 복종케하는 것의 구체적인 모습을 앞의 19절-23절에 언급하고 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자유로운 사람이 스스로 선택해서 종이 되다니? 그것은 이유가 있었다. 바로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었다.

그는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말고,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할 것을 (갈5:13)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성향과 취미와 신분과 자유를 기꺼이 포기하는 자리로 나갔다. 유대인이 아니지만, 유대인을 얻고자 그들과 같이 되었고, 율법아래 있지 않지만 그들을 얻고자 율법아래 있는자 같이 되었다. 약한자들에게는 약한자와 같이 되었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된 바울, 자신이 가진 고집과 취향이 있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과 같이 행동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절제했다. 이것은 아무쪼록 몇몇사람들을 구원하고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한다고 한다.

 

그의 종됨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친구들을 예수님께 이끌기 위해 그들과 같이 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겠는가? 나의 고집을 버리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고 그들에게 ‘재는 나와 달라’가 아니라 ‘재는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어, 재는 나와 같아’라고 말할 수 있게 우리 자신을 희생할 수 있겠는가? 그 친구가 예수님을 알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작은 고집들을 버릴 수 있겠는가?

※ 정곡을 콱 찌르며

 

우리는 달리기 선수가 스스로를 훈련시키고 절제하는 것처럼, 복음의 썩지 않는 면류관을 바로보며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스스로 복종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사람들은 기껏해야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기위해 고생을 사서하지만,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이기기를 다투는 자들이다. 이왕 달린 김에 상을 얻도록 달려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