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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칼럼 / 아버지께로 돌이키기 / 김광영 묵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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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칼럼 / 아버지께로 돌이키기 / 김광영 묵상

시애틀항해일지 2022. 1. 30. 08:35

예수님을 입맞춤으로 파는 가룟유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

 


아버지께로 돌이키기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다. 둘 다 길 잃은 아이였다. 유다는 더 이상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진리를 붙잡을 수 없어 스스로 목을 매달았다. 탕자의 경우에 빗대면 그는 아들 됨이라는 검을 팔았다. 그러나 베드로는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그것을 주장했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왔다. 유다는 죽음을 선택하나, 베드로는 삶을 선택했다. 내 앞에도 항상 이런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나우웬과 함께 하는 아침’, 이블린 벤스 편집, ivp 중에서)

 

우리는 자신의 인생이 때로 가치 없는 삶, 무의미한 고통이라고 느껴지는 우울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다 하신 성경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한 독한 절망을 들이키며, 주저앉을 때에도 성경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세상의 목소리는 우리를 어둠에 던져 넣는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어둠의 자리에 있다 해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집 떠난 탕자처럼 방황하고 자괴감에 사로잡힐 때도 있지만, 우리는 떠나온 집이 있다는 사실, 우리를 한없이 자비롭게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 때에야 우리는 스스로 돌이킬 수 있고, 아버지의 그 품에 돌아감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시편의 시인은 영적침체기 자신을 향하여 명령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25)”


램프란트 '탕자의 귀향'